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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동향

[정책 및 기술동향] 노석준의 메타버스 세상…상상력, 메타버스의 출발점
2024.12.15

메타버스의 출발점은 단연 상상력이다. 상상력이 가상성을 탄생시켰고, 가상성이 가상 세계를 만들면서 지금의 메타버스에 이르렀다. 아무리 기술이 뛰어나도 상상력이 없다면 현실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구현할 수 없으며, 지금보다 더 나은 변화와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도 '코스모스'(COSMOS)에서 "상상력 없이 갈 수 있는 곳은 없다"며 상상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류가 가상성을 구체화했던 최초의 방식은 그림이다. 원시인들은 자신의 무리가 용맹하게 사냥하는 모습, 이야기로만 전해 듣던 상상의 괴물 등을 땅이나 바위, 나무에 그려냄으로써 머릿속에만 머물던 가상의 것을 눈앞에 구체화했다. 이후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달로 회화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고 발전해왔다. 그러나 모든 미술 작품 속 이미지는 화가의 예술적 상상력으로 창조된 결과물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예술적 상상력은 특정한 동기로부터 비롯된다. 이때 동기는 실제 존재하는 대상일 수도 있고,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추상적인 이미지일 수도 있다. 이 동기가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해 상상력이 발현되고 구체적인 이미지로 탄생하게 된다. 인류 최초의 그림들도 결국 특정한 동기로부터 비롯된 자극이 상상력을 발현시켜 탄생한 것들이다.

 

◇ 상상력, 거짓과 오류인가, 정신의 능동적 능력인가

 

인간의 상상력에서 시작된 디지털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를 이해하려면 서구의 상상력 이론에 기초해 역사 속에서 상상력과 이미지의 관계가 어떻게 이뤄져 왔는지 간략하게라도 살펴봐야 한다. 서양의 전통 철학은 이성에 기반을 둔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만이 인류를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다. 반면, 이미지와 상상력은 환상을 만들어 인간을 착각과 기만에 빠뜨리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다뤄져 왔다.

 

플라톤은 '판타지아'(phantasia)와 '이데아'(idea)의 개념을 제시하며 이미지는 현실에 대한 어떠한 지식도 제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감각과 인지에 의한 대상의 이미지가 정신적인 부분에서 형상화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술을 자연에 대한 '모방(mimesis)'이라며 상상력의 측면은 여전히 부정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이러한 상상력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더욱 고조돼 '육체적인 감각'(physical sense)과 동일시했다. 이렇듯 이미지나 상상력과 같은 감성적 측면은 이성의 방해물인 '거짓과 오류'로 여겨지며 오랫동안 서구 사회에서 기피됐다.

 

17세기에 이르러 경험주의 철학자들은 경험적 지식을 절대시하며 인간의 실제적인 경험만이 지식과 학문의 바탕이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인간 내면의 정신적 영역은 수동적 기관이라고 규정한다. 하지만 인간 정신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인간의 내면에 관심을 두게 되면서 상상력은 정신의 능동적인 능력으로 인식하게 된다.

 

대표적인 낭만파 시인이자 평론가인 콜리지(Samuel Taylor Coleridge·1772∼1834)는 철학과 문학에 몰두하면서 상상력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론을 정립했다. 콜리지는 상상력은 '변화를 주도하는 정신 능력'이기에 '현상세계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드러내는 능력'이라고 했다.

 

체험적인 일차적 상상력과 창조적인 이차적 상상력을 구분함으로써 상상력의 무의식적인 면과 의식적인 면을 함께 언급했다. 시인이었던 자기 경험을 토대로 사물에 대한 체험에 형태를 입히는 과정을 이론화함으로써 작품을 창조하는 원리를 상상력으로 보았다.

 

이처럼 과거 서구 철학에서 이성의 방해물이자 오류의 원천으로 여겨진 상상력은 분석심리학의 창시자인 카를 구스타프 융(Carl Gustav Jung)을 비롯한 많은 20세기 철학자들로부터 현대인의 심리적 불균형을 해소하고 내적 풍요를 가져오는 방안으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Edmund Husserl)은 사실 너머의 본질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자각되는 자아의 사유 작용과 깨어 있는 의식을 강조했다. 프랑스의 철학자인 메를로-퐁티(Maurice Merleau-Ponty)는 '경험적 근거'인 지각과 사유를 연결해 정신적 관념의 세계와 체험적 감각의 세계가 분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 했다.

 

이처럼 현상학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정신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상상하는 주체의 의식'에 주목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들은 이성을 우위에 두고 있는 서구의 전통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 이미지를 완성하는 상상력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는 이미지와 상상력의 주관적 세계가 이성보다 우위에 있음을 주장했다. 그는 '현실 세계와 꿈의 세계를 연결하는 것은 우리의 감성이고, 이 감성의 세계는 우리가 막연하게 짐작해왔던 것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인간의 삶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바슐라르는 이미지의 대상을 시각적인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이루고 있는 물질로 파악하고자 했다. 예를 들어, 물이 우리에게 의미가 있는 것은 담는 용기에 따라 달라지는 물의 외형적인 형태가 아니라 감성적인 인식 때문이다. 즉, 똑같은 물이라도 폭풍우 치는 바다가 지니는 무서움과 봄날의 시냇물이 지니는 경쾌함은 다른 이미지를 전달한다고 믿었다.

 

육면체의 물체가 있다고 가정했을 때도 형태를 통해 상상되는 이미지는 물체의 물성마다 다르다고 한다. 같은 크기와 모양의 육면체라고 해도 차가운 금속인 경우와 부드러운 진흙인 경우는 각기 다른 이미지를 떠오르게 한다는 것이다. 진흙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부드러운 감촉이 촉각을 자극해 이와 연관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곧이어 몽상으로 빠져들게 함으로써 '진흙으로 된 육면체'의 물체가 만들어내는 이미지는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다.

 

여기에서 진흙은 '우리의 일부가 된 하나의 원초적 물질로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바슐라르가 '촛불을 보는 사람은 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그는 촛불을 바라보며 명상에 잠기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 역시 내면을 바라보게 하는 불의 물질성을 강조한다.

 

물질적 이미지는 이렇듯 대상의 물질성을 상상하는 힘에서 비롯된다.

 

바슐라르는 상상의 세계에도 일정한 질서가 존재한다고 믿는다. 즉, 모든 이미지는 상상으로 만들어지지만, 그 과정에는 분명한 규칙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4원소의 법칙'이다. 그는 '물과 꿈'(L'eau et les reves)을 통해 "우리는 상상력의 영역에서 불, 공기, 물, 흙의 어느 원소에 결부되느냐에 따라 다양한 물질적 상상력을 분류하는, 4원소의 법칙을 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바슐라르는 세계적인 작가들과 그들이 창조하는 문학의 특정한 이미지 사이에 어떤 연결 구도가 있는지를 연구했다. 그 결과 작가마다 4원소 중에서 선호하는 원소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작품에 반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예컨대, 호프만(E.T.A. Hoffmann)은 불의 이미지를, 에드거 포우(Edgar Poe)와 스윈번(Algemon C. Swinbume)은 물의 이미지를, 니체는 공기의 이미지를 선호한다고 바슐라르는 말한다.

 

이미지와 상상력은 대표적인 실존주의 철학자인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의 사유와 글쓰기에 끊임없이 출몰하는 주제였다. 그는 "상상적이지 않은 사유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상상력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사르트르는 기존의 이미지 개념은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모두가 이미지에 물질적인 성질을 부여함으로써 제대로 된 이미지의 개념을 정립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의 대다수 철학자가 이미지를 사물화한 다음 하나의 응고된 덩어리로 간주해 설명하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러한 이미지의 개념에 동의하지 않으며 이미지를 사물이 아닌 의식의 활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미지와 상상력의 관계를 연구한 학자들의 결론에 따르면, 물질은 본래의 형태인 원형에는 변함이 없으나 각 개인이 물질성을 어떻게 상상하는가에 따라 각자의 이미지가 다르게 형성된다. 이를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메타버스에 적용해보면, 시대와 기술 발전의 정도에 따라 메타버스가 구현하는 각 가상공간의 형태는 달라지지만 공간 본래의 형태인 원형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칼럼에서 언급한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벽화, 프랑스 남부의 라스코 동굴벽화와 같은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만 하더라도 동굴이나 동물의 그림이라는 원형은 지금까지도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그러나 현대의 사람과 선사시대의 사람이 바라보는 이미지는 확연히 다르다.

 

과거 사람들은 동굴의 어두운 환경, 빛의 변화, 제례 의식의 퍼포먼스, 사냥감을 향한 두려움과 욕망이 작용하면서 현대의 우리가 짐작할 수 없는 엄청난 가상의 이미지가 완성됐을 것이다.

 

디지털 가상공간인 메타버스도 마찬가지다. 디지털 기술, 컴퓨터와 모니터, 각종 디바이스, 그 안에서 구현된 고도화된 그래픽 등 본래의 형태인 원형은 늘 그대로다. 그러나 인간의 상상력이 극대화된 가상 공간의 이미지는 원형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것으로 창조된다. 메타버스 속에서 구현되는 다양한 공간과 아바타, 인간의 활동도 마찬가지다.

 

개인을 대리하는 아바타와 현실 공간을 대리하는 건물, 그 안에서 일어나는 행위는 본래의 원형이 유지된다. 단지 그것을 메타버스 참여자인 개개인이 어떻게 상상하고 활용하는가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고 가상성에도 극명한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같은 것을 보고도 서로 다른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 상상력의 힘이라면, 결국 미래 메타버스 세상에서 우리가 어떤 이미지를 보게 될지는 오롯이 우리의 상상력에 달려 있다.

 

연합뉴스 / 이세영 기자

원문 : https://www.yna.co.kr/view/AKR20241215028700371?input=119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