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 스키다노브(Alexander Skidanov·38) 니어 프로토콜 공동창업자는 지난 9일(현지시각) 태국 방콕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미 일반인은 구글과 오픈AI의 서비스를 편하게 이용하고 있는데 왜 탈중앙화된 인공지능(AI)이 필요한지 묻자 그는 “특정 기업에 의해 AI 이용 자유가 통제되지 않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탈중앙화된 AI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니어는 블록체인 개발사로 유명하지만 사업 시작은 AI였다. 니어는 2017년 스키다노브 창업자와 일리야 폴로수킨 니어 최고경영자(CEO)가 AI 프로젝트 개발을 목적으로 설립한 회사다. 초창기 회사 이름 역시 니어AI였다. 사업 초기 니어는 전 세계 개발자들과 협업했는데 각국 금융 환경이 달라 보수를 지급하는 데 애를 먹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탈중앙화 금융 인프라인 블록체인 개발로 방향을 전환했다.
스키다노브 창업자는 “창업 초기 러시아, 중국, 폴란드 등 여러 나라의 개발자들과 데이터 작업을 했는데 이들에게 돈을 줄 때 러시아나 중국에서 페이팔을 못 써 불편함을 겪었다”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블록체인 서비스 이용을 고민하다가 ‘차라리 우리가 만들자’라고 생각해 블록체인 개발에 뛰어들었다”고 회상했다.
2018년부터 사업 방향성을 바꾼 후 니어는 글로벌 블록체인업계 주요 기업 반열에 올랐다. 지난 22일 기준 니어 블록체인 메인넷 이용자 수를 파악할 수 있는 활성화지갑수(UAW)는 최근 한 달간 2600만좌로 집계돼 전체 메인넷 중 2위를 차지했다. 메인넷에 예치된 총자산(TVL)은 2억6800만달러(약 3754억원)로 전체 메인넷 중 30위다. TVL 수치가 클수록 블록체인 이용자들이 해당 메인넷을 신뢰하고 돈을 예치함을 의미한다. 니어가 발행하는 니어 코인 역시 거래가 활발하다. 이 코인의 시가총액은 70억달러(약 10조원)로 전체 가상자산 중 21위다.
블록체인업계에서 입지를 다진 니어는 다시금 AI 서비스 개발에 도전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10일 방콕에서 니어가 주최한 콘퍼런스 ‘리댁티드’에서 폴로수킨 CEO와 스키다노브 창업자는 니어의 생성형 AI 비서 서비스를 공개했다. 해당 AI 서비스는 이용자가 자연어를 입력해 뉴스 스크랩과 같은 간단한 업무부터 가상자산 관리와 같은 비교적 복잡한 금융 업무까지 수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니어가 강조하는 AI는 탈중앙화 AI다. 단일 기업이 데이터 통제권을 가진 게 아닌 이용자의 데이터 접근권이 보장된 AI 서비스를 만드는 게 니어의 목표다. 개인 이용자가 구독료를 지불하고 오픈AI의 챗GPT를 이용하더라도 데이터 처리 과정 등을 설계한 코드에 접근할 수는 없다. 반면 니어의 AI 서비스는 오픈소스 모델을 표방한다. 이용료를 지불한 이용자라면 누구나 AI 프로그램 코드 및 데이터에 접근할 권한을 받는다. 특정 주체에 데이터가 편중되지 않도록 분산저장하고 이용자의 접근권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블록체인이 활용된다.
탈중앙화된 AI 서비스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스키다노브 창업자는 이용자 중심의 인터넷 환경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스마트폰 시장이 등장할 때 항상 1~2개의 기업이 시장을 장악했다”며 운을 뗐다. 또한 “AI 분야 역시 오픈AI와 앤트로픽이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사람들이 챗GPT를 이용할수록 오픈AI에 모든 데이터가 쏠리는 꼴이다. 몇 년이 지나면 데이터 비대칭이 심해 어떤 기업도 오픈AI를 따라잡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어 “오픈AI가 모든 데이터 접근권을 통제한다면 이용자 중심의 인터넷 환경은 만들어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블록체인 기술로 가상자산이라는 탈중앙화된 화폐가 등장했다”며 “니어는 데이터 통제 권한을 탈중앙화해 AI에 대한 접근을 모든 일반 이용자에게 돌리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스키다노브 창업자는 일반인 이용자들이 니어의 AI 서비스를 이용할 때는 개인 비서처럼 활용할 수 있다며 사례를 들었다. 그는 “새로 출시된 가상자산 거래소를 이용한다는 상황을 가정했을 때 개인은 회원가입부터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니어의 AI 서비스에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교환해 줘’라고 명령어를 입력하면 AI 서비스가 응용 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찾아서 대신 거래를 수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각각의 목적에 맞게 활용되는 여러 비서를 둘 수도 있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스키다노브 창업자는 “다양한 비서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며 “한 에이전트가 가상자산 시장을 분석하고 다른 에이전트는 이용자에게 분석 내용을 메신저로 보낸다. 이용자가 가상자산 거래를 결정하면 세 번째 에이전트가 거래소에서 가상자산을 구매하는 방식이다”라고 묘사했다.
니어의 목표는 손안의 AI 비서가 이용자 대신 모든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서비스를 고도화시키는 것이다. 스키다노브 창업자는 “한 이용자가 블록체인 개념을 모른 채 가상자산만 가지고 있어도, AI 비서가 이용자에게 ‘가상자산을 담보로 스테이블코인(법정화폐와 가치를 연동하는 코인)을 빌려 사업을 하자’고 제안한 뒤 이더리움 블록체인에서 대출을, 아비트럼에서 사업을, 솔라나에서 자원 구매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여러 블록체인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도 AI 비서의 추천만으로 블록체인상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스키다노브 창업자는 AI 기술 발전을 통해 전통 금융권의 영역을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가 대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디파이란 중개인이 없는 금융을 뜻한다. 가상자산 전자지갑을 통한 가상자산 거래, 블록체인 기반 직접 결제 등이 대표적인 디파이 사례다.
그는 “현재 디파이 서비스에 버그나 악성코드가 심겨 있더라도 이용자가 하나하나 코드를 뜯어보기는 어렵다”며 “AI 기술이 발전하면 이 또한 손쉬운 검증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AI가 이런 검증을 하는 데 한 달이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지만 미래엔 낮은 비용으로 하루 만에 검증을 끝낼 수도 있다”며 “검증이 완료된 디파이는 전통 금융을 빠르게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조선비즈 / 김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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