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보안 업계가 절망에 빠졌다. 블록체인을 활용해 디지털 인증을 활성화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약속과 달리 내년도 예산이 반토막 난 것으로 나타나면서다. 세계적 유망 분야에 대한 미래 성장동력이 꺾였다는 우려가 쏟아져 나온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블록체인 시장은 우상향 중에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2023 블록체인 산업 실태조사’ 보고서에는 2018년 약 725억원 수준에서 2019년 약 2085억원 수준으로 급증한 데 이어 2023년 약 4337억원에 도달하는 등 지속 성장세를 띤 것으로 집계됐다.
세계적으로도 국내 블록체인 시장은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달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위크 2024(KIW 2024)’에 참석한 알렉상드르 드레퓌스 칠리즈 CEO는 “앞으로 한국과 함께 블록체인 시장 성장을 도모할 생각”이라며 국내 블록체인 시장의 잠재성을 고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미래 성장동력이 꺾였다는 우려의 시선이 거둬지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고 세계적으로도 유망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정작 정부는 무관심하다며 토로하는 분위기다. 전 세계가 뛰어든 만큼 정부 지원도 지속돼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사태의 배경에는 내년도 과기정통부의 예산 삭감이 있다.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기정통부로부터 확보한 ‘최근 4년간 블록체인 관련 지원 사업 예산 및 국비 투자 현황’에 따르면 내년도 블록체인 관련 지원 사업 예산은 309억여원으로 올해보다 약 210억원 삭감됐다.
보안 분야 또한 ‘칼질’을 피하지 못했다. ‘블록체인 기술 및 보안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 배분된 예산도 올해 27억6500만원에서 내년도 9억원으로 약 18억원 감액됐다. 예산 규모가 3분의 1 수준으로 쪼그라든 셈이다.
게다가 ‘블록체인 전문기업 육성’ 예산은 내년에 단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다. 해당 예산은 2023년 81억원에서 올해 39억여원에서 이미 절반 이상 줄어든 바 있다. 관련 기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예산도 올해 37억5000만원에서 첫해 만에 14억4000만원으로 삭감됐다.
정부가 블록체인 보안 기술을 국제 표준화하겠다고 나선 모습과도 대치된다. 과기정통부는 지난달 ‘블록체인 기반 인보이스 보안’과 ‘산업용 IoT 데이터 보호 블록체인 기반 스마트 제조 보안’이 국제전기통신연합에서 신규 표준화 아이템으로 승인됐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과거 공약과 상반되는 형국도 업계 배신감의 이유가 됐다. 윤 대통령은 대선후보자 시절 블록체인을 활용한 디지털 혁신을 국정과제로 선정하며 해당 분야 성장을 약속했다. 이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디지털 인증’이 120대 국정과제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 같은 정부의 블록체인 보안에 대한 소극적 태도는 세계적인 추세를 거스르는 모양새이다. 세계적으로는 보안 분야에 블록체인을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향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강력한 보안 솔루션의 수요도 높아졌다.
일례로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블록체인 경쟁력 확보를 위한 ‘블록체인혁신법’, 캘리포니아주 ‘디지털금융자산법’, 뉴욕주 ‘스테이블코인 사업자 지침’ 등을 발표한 바 있다. 또 ‘혁신 및 경쟁법’과 ‘미국경쟁법’을 추진하며 사이버 대응 지원 강화 등의 내용을 포함, 경쟁력을 키웠다.
EU 또한 유럽 디지털 신원 지갑 제도를 신설한 ‘전자신원확인체계’와 ‘디지털 자산에 대한 규제 프레임워크’를 발표하며 국경 간 문서 공증, 졸업증명서 인증, 신원인증, 데이터 공유 등 공공 부문을 중심으로 블록체인을 도입하고 그 사례를 점차 확산해나가는 양상을 띤다.
주변국인 일본과 중국도 기술개발과 법제 개선 등을 통해 블록체인 역량을 계속 키우고 있다. 일본은 ‘디지털 사회 실현을 위한 중점 계획(2022)’을 기본 전략으로 국가 차원에서 지원 중이다. 중국은 7대 ICT 기술로 블록체인을 지정해 디지털 중국의 건설 방향을 제시했다.
업계 관계자는 “블록체인 기술은 암호화폐뿐 아니라 모바일신분증, 자격증명, 전자증명서 등 공공 영역에도 적용되면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라며 “지속적 관심과 예산 확보를 통해 육성해야 하는 만큼 정부의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기를 바란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전 세계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달리는 마당에 현 정부는 관련 예산을 반토막 냈다”며 “보안 경쟁력 강화 등 필수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은 미래 산업 경쟁력 후퇴를 방치하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과기정통부는 삭감에 따른 비판을 수긍하면서도 불가피했다며 해명했다. 내년도 블록체인 예산 삭감 이유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인공지능(AI)처럼 정부가 주안점에 둔 사업에 주력하기 위해 예산 조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뼈아프게 생각하는 부분”이라고 답했다.
이뉴스투데이 / 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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