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세계 최대 전자·정보통신(IT) 전시회 ‘CES 2025′가 열린 라스베이거스 컨벤션센터의 롯데이노베이트 부스. 이 회사가 선보인 메타버스(3차원으로 표현된 가상 세계) 플랫폼 ‘칼리버스’를 체험하기 위해 관람객 300여 명이 모여 있었다. 미국 빅테크 메타가 만든 확장현실(XR) 기기 ‘퀘스트 3′를 끼고 칼리버스에 구현된 K팝 무대를 봤다. 4인조 아이돌 그룹 ‘키스오브라이프’ 콘서트의 맨 앞자리에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몇몇 관람객은 영상을 보며 춤을 추거나, 가까이 다가오는 가수들에 놀라 흠칫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상에 등장하는 무대는 모두 인공지능(AI)으로 구현한 가상의 세계다. 이 회사 관계자는 “AI를 통해 가수와 무대에 대한 수많은 데이터를 학습해 사람이 현실의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과 거의 차이가 없도록 구현했다”고 말했다.
이 전시 공간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게 ‘게임과 XR’ 업종이다. 부스마다 XR이나 홀로그램과 같은 가상 체험을 하기 위한 사람들로 줄이 늘어져 있었다. 지난해만 해도 보기 어려웠던 광경이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대유행)으로 비대면이 일상화됐을 때, 가상의 사무 공간을 만들어 원격 근무를 하는 ‘메타버스’는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을 정교하게 구현하지 못하면서 ‘메타버스 열기’는 금방 사라졌다. 지난해 CES에서도 메타버스를 앞세운 전시관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AI와 결합해 현실과 구분이 안 될 정도의 콘텐츠가 제작되고, 기기(하드웨어)도 발달하면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이다.
메타버스뿐 아니라 ‘스마트 글라스’(지능형 안경)’와 ‘홀로그램’(입체 영상) 등 한때 테크 업계의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다가 밀려난 산업들이 AI로 부활하고 있다.
◇AI가 부활시킨 메타버스
프랑스 우주 기업 유니스텔라는 천문학자처럼 하늘을 관찰하거나 자연환경 등을 실감 나게 탐험할 수 있는 스마트 증강현실(AR) 쌍안경을 선보였다. 낮에 산책로를 탐색하거나 밤에 별을 관찰할 때 주변의 봉우리, 하늘의 행성과 은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보를 함께 보여준다. 쌍안경을 통해 보는 화면도 또렷하다. 쌍안경에서 이런 고품질의 이미지를 구현할 수 있는 것은 AI가 광공해를 제거했기 때문이다. 천체를 관찰하기 위해 불빛이 없는 어두운 곳을 찾아다닐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소니는 현실 세계를 스캔해 3차원(3D) 입체 영상으로 재현하는 공간 콘텐츠 제작 설루션 ‘XYN’(진)을 공개했다. XYN은 고사양의 OLED 패널과 카메라 센서 6개를 이용해 사용자 주변의 공간을 인식한 뒤 실사와 가상을 섞은 혼합현실(MX)을 만들 수 있게 해준다. XYN은 AI로 공간의 소리와 사용자의 이미지를 최적화한다.
이 같은 기술은 2022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생성형 AI 때문에 가능해졌다. 이미지 생성 AI를 활용하면 메타버스 내에서 더 정교한 환경을 손쉽게 만들 수 있다. 또 대규모언어모델(LLM) 덕분에 가상 체험을 하면서 음성이나 문자를 통해 쉽게 의사소통이 가능해지기 때문에 사용자들의 만족감도 극대화할 수 있다.
◇촉각까지 확장된 가상체험
공상과학(SF) 영화에서만 볼 수 있었지 현실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았던 홀로그램도 CES에서 상용화의 물꼬를 텄다. 홀로그램은 큐브 속에서 사람이나 동물 모습을 3차원으로 구현하는 영상 기술이다. 일본 스타트업 ‘사이브런 이노베이션′이 선보인 ‘코드27’은 홀로그램에 자신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입력할 수 있다. 큐브 속에서 실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구현된 캐릭터에는 생성형 AI가 탑재돼 있어 사용자와 말을 나누고 감정을 교환하기도 한다.
가상 체험은 단지 시각적인 효과만 주는 것이 아니라 촉각을 동원한 햅틱 기술(진동으로 알리는 기능)까지 활용하고 있다. 캐나다 스타트업 ‘해플리 로보틱스’는 휴대용 3D 햅틱 장치 ‘민버스’를 공개했다. 막대 모양의 제품을 쥐고 움직이자 모니터 속의 공이 동작 강도를 감지하여 이동하고, 공의 움직임이 막대를 쥔 손끝에 느껴졌다. 한국 스타트업 ‘비햅틱’의 부스에선 햅틱 조끼·팔찌를 체험하기 위해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햅틱 조끼·팔찌를 착용한 채로 가상 체험을 해보면 권투 글러브를 끼고 인형을 때릴 때 손끝에서는 타격감이, 활을 쏠 때 몸통에서는 장력이 느껴졌다.
조선일보 / 변희원, 박지민 기자
원문 : https://www.chosun.com/economy/tech_it/2025/01/10/2J2I5ICHPJDUTD72I3W7HUULEA/?utm_source=naver&;utm_medium=referral&utm_campaign=naver-n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