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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동향

[정책 및 기술동향] 한국 블록체인 산업, 아직은 늦지 않았다
2024.12.24

부쩍 오른 환율이 한국 경제의 위기를 상징하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글로벌 경기침체, 수출둔화, 고금리 등으로 경제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제조업은 중국 경기부진으로, 내수는 소비위축과 물가상승으로 타격을 받고 있다. 부동산 불안과 가계부채 문제도 심각한 상황에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윤석열발 비상계엄은 경제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해결이 복잡한 국가경제 문제와 달리 한국 블록체인산업 위기의 원인은 의외로 단순하다. 글로벌 표준에서 일관성 있게 벗어난 산업정책. 위기의 원인이 분명하기에 늦지만 않았다면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다.

 

산업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블록체인산업의 시계는 2017년 12월에 멈춰 있다. 당시 정부는 '가상자산 관련 긴급대책'을 발표하면서 가상자산 관련 범죄를 단속하고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보유와 투자를 금지하며 은행이 실명계좌를 관리하도록 했다. 이 시기에 정해진 '금융자본과 가상자산의 분리' 기조는 놀랍게도 7년이 지난 지금도 유지된다. 그 결과 한국에서는 법인의 가상자산 계좌개설이 불가능하고 블록체인 전문기업들이 금융산업과 연계는 물론이고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과거 우리와 비슷한 입장이던 선진국들은 그 사이 가상자산제도를 정비하고 블록체인산업을 지원하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이란이나 인도네시아처럼 금융기관의 가상자산 취급을 금지한다.

 

정부가 가상자산을 실체 없는 '사기'로 의심한 7년 동안 많은 블록체인 기업이 한국을 떠났다. 규정이 없으면 다 금지해버리는 사실상의 규제로 인해 도무지 사업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카이아는 싱가포르로 떠났고 위믹스는 두바이에 자리잡았으며 블록체인 투자기업 해시드조차 중동으로 이전할 계획이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우리가 개발한 넥시온도 두바이로부터 강력한 러브콜을 받고 고민하고 있다. 기업들의 해외 이전만큼 심각한 일은 무서운 속도로 진행되는 블록체인 기술인력의 해외유출이다. 기술인력의 부재는 블록체인산업의 소멸을 초래할 수 있다.

 

한편 국내 코인거래소는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국내 프로젝트를 도외시하고 정체불명의 해외 프로젝트를 상장하며 가상자산 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들고 있다. 실례로 최근 국내 거래소에 상장된 무브(MOVE)는 상장 직후 4643배 폭등했다가 당일 99.8% 폭락했는데 상장의 근거가 뭔지 아무도 알 수 없다. 국내 프로젝트니까 돕자는 얘기가 아니다. 차별하지 말고 국내 프로젝트에도 기회를 열어달라는 말이다.

 

한편 블록체인 기술의 유용성을 모를 리 없는 정부는 가상자산을 배제한 블록체인 기술도입을 목표로 각종 시범사업을 추진해왔다. 프라이빗 체인을 활용한 한국형 블록체인 생태계 구축이라는 목표는 블록체인 신뢰프레임워크(KBTF)라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한국 한정 공공서비스일 뿐 민간과 글로벌 영역으로의 서비스 확장은 구조상 불가능하다. 이제는 프라이빗 체인의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더이상 프라이빗 체인과 미러링이라는 옥상옥을 만들지 말자.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블록체인 갈라파고스로 만들 게 아니라면 정부 주도 계획에서 퍼블릭 체인의 도입과 적용을 배제해서는 안된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다고 절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뼈아프지만 잘못된 정책은 수정하면 된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지금부터라도 만들면 된다. 제발 눈치게임하다 국내 블록체인산업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은 "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시장을 상대하는 우리나라 블록체인 기업들의 족쇄를 풀어주자. 그들이 떳떳하게 부가가치를 창조할 수 있도록 배를 만들어주자. 다행히도 아직은 우리에게 12척 이상의 기술기업이 남아 있다.

 

머니투데이 / 소윤권 엔버스 대표

원문 : https://news.mt.co.kr/mtview.php?no=20241223102028628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