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수십만 년 전에는 지구상에 여러 종류의 인류가 살고 있었으나 끝까지 생존한 종은 현재의 인류인 호모사피엔스뿐이라고 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사피엔스가 처음 등장한 15만여 년 전에 함께하던 다른 인간종은 왜 사라졌으며, 7만여 년 전에 다른 종이 모두 멸종할 때 사피엔스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사피엔스는 어떻게 지금과 같은 혁신적인 발전을 이끌 수 있었을까? 이스라엘 출신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Yuval Harari)는 그 이유를 사피엔스만의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인 '인지 혁명'에서 찾는다. 약 7만 년 전부터 호모사피엔스는 다른 종들과 달리 언어를 유연하게 사용하기 시작했으며, 이를 통해 무리를 단단하게 결속시키면서 결국 지구상에 유일한 인간종으로 생존하게 됐다.
사피엔스가 생존을 넘어 지금처럼 번영과 발전을 이룬 바탕에는 그들만의 특별한 언어 능력인 '허구적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었다.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Sapiens)에서 "허구를 말할 수 있는 능력이야말로 사피엔스가 사용하는 언어의 가장 독특한 측면이다. 오직 호모사피엔스만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즉, 사피엔스는 그들만의 가상적 스토리텔링의 능력으로 새로운 사고 능력과 의사소통 방식을 만들었다. 그것을 기반으로 집단을 이루고 사회와 국가를 세웠고, 오늘날에 와서는 디지털 가상 세계인 메타버스를 통해 가상적 스토리텔링의 능력을 확장해나가고 있다.
◇ 사피엔스는 어떻게 제국을 건설했나?
인류가 문명을 이루기 전인 원시시대에 사피엔스는 사자나 호랑이와 같은 육식동물을 피하고 들소나 야생마, 사슴 등을 사냥하기 위해 다 함께 지혜를 모아 전략을 세우고 행동했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집단을 위한 강력한 방어력과 공격력을 확보하게 됐고, 무리를 이뤄 공동으로 사냥하고 생활하는 사회집단을 이뤘다.
그런데 여기에도 한계가 있었다. 무리를 이루는 최대 인원은 150명이었다. 그 이상의 인원을 한 무리에 모으는 것이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왜 150명이 한계였을까?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인간이 무리를 지을 수 있었던 이유로 '뒷담화'를 꼽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호모하빌리스, 호모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호모사피엔스 등의 많은 인간종 가운데 유일하게 언어 활용에 능숙한 호모사피엔스는 '뒷담화'를 통해 무리를 형성했다고 한다.
뒷담화는 악의적인 능력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사람이 모여 긴밀하고 복잡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려면 필요한 능력이라고 설명한다.
다른 인간종과 비교할 때 언어 능력이 뛰어난 사피엔스는 뒷담화를 통해 사람을 모으고 무리를 지었으나 150명이 최대치였다. 150명을 넘어서면 무리의 결속력이 무너져 그중 일부가 이탈해 새로운 무리를 만들었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질문한다.
"사피엔스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 결정적 한계를 넘어 수십만이 거주하는 도시와 국가를 만들고, 마침내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는 사피엔스가 150명이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그 이상의 사람을 결속해 도시와 국가, 심지어 거대한 제국까지 건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만의 특별한 능력인 '허구적 스토리의 생산 능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언어에 능숙한 호모사피엔스는 뒷담화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추상적이고 가상스러운 실체를 만들고, 이들을 주인공으로 허구적 스토리를 만들어 집단 간의 동질성과 단결을 공고하게 했다. 이웃과 집단, 새로운 사람과 후세에 이 허구의 스토리를 꾸준히 전달하고 공유함으로써 수많은 낯선 사람들을 집단적 상상으로 결속시키고, 이를 토대로 성공적 협력과 협동을 끌어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야기가 전파되고 무리의 수가 늘어날수록 허구적 스토리도 점점 더 다양하고 정교해졌다. 이는 더 많은 사람을 하나의 무리로 결집하는 선순환을 일으켰다. 인간은 부족 정신, 국가, 민족, 정치, 철학, 종교 등 추상적이고 가상스러운 것들을 전달하고 공유함으로써 집단의식을 만들고, 이를 통해 수많은 새로운 사람들과도 공감하고 협력할 수 있었다.
이렇듯 인류는 허구적 스토리를 만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으로 끊임없이 가상성을 탄생시켰다. 이를 기반으로 집단 구성원들을 결속하고 통제하면서 사회와 국가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더 큰 성장을 위한 도전을 반복하면서 지금의 발전된 세상을 창조했다.
◇ 가상성에서 비롯된 사피엔스의 인지 혁명과 교육 혁명
사피엔스라 불리는 인간은 과연 '허구적 스토리'를 어떻게 생산하고 활용하면서 지금과 같은 발전을 이룬 것일까?
인간의 스토리텔링 활동은 문자가 현재와 같이 완전히 확립되기 전에는 대부분 구전으로 이뤄졌다. 그들의 스토리는 어떠한 사실에 근거할 수도 있고, 사실과 상상력이 결합한 형태일 수도 있다. 어떤 형태의 이야기든 말을 통한 전파이므로 원본을 그대로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스토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때마다 조금씩 추가되거나 삭제되는 등 변형이 계속 일어나게 된다.
게다가 이야기는 스토리텔러의 감정이나 생각, 선입견 등이 개입되기 쉬워 빈번하게 왜곡된다. 예를 들면 '누군가 밤에 산을 지나다가 짐승과 마주쳐 놀라서 도망을 쳤다'라는 스토리가 여러 사람에게 거듭 전달되면서 짐승은 '호랑이'가 되기도 하고, '뿔 달린 괴물'이 되기도 한다.
놀라서 도망친 것도 '공격당해 큰 상처를 입었다', 심지어 '죽었다'와 같이 점점 과장되고 왜곡된다. 이야기가 전해질 때마다 스토리텔러의 공포가 거듭해 보태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스토리에서 '어떤 사람이 산속에서 무서운 생물체를 발견했다'라는 사실은 이렇다 할 변형 없이 계속 전달된다. 그런데 '그 사람이 과연 무엇을 만났는가?', '그래서 어떻게 됐는가?'와 같이 사람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부분은 각 스토리텔러의 주관적 감정과 상상력이 결합해 계속 왜곡이 일어난다.
극도로 과장되고 왜곡된 스토리는 사람들의 공포심을 더욱 자극하고 그들을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효과를 낳는다.
물론 공포감 외에도 환희, 슬픔, 안타까움, 분노 등 여러 감정에 공통으로 적용된다. 모든 지역의 신화적 스토리와 종교적 스토리의 가상적 요소가 지나치게 크고 허구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한편, 사피엔스의 가상스러운 스토리는 그들의 인지적 능력을 키우는 최고의 도구가 돼줬다. 입을 통해 스토리를 전하려면 우선 이야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들을 때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해야 다시 다른 사람이나 후대에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타인에게 이야기를 전하려면 스토리의 전체를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 사피엔스는 이런 스토리의 전달 과정을 반복하면서 이해력과 암기력 등 인지능력이 저절로 향상됐다.
그뿐만이 아니다. 스토리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상상력과 자기중심적 관점이 결합해 가상성이 덧붙여지는 스토리의 재창조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후대로 갈수록 이야기의 덧붙임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고, 인간은 상상력과 창의력까지 향상하게 된다. 다시 말해, 스토리텔링의 방식과 스토리의 반복적인 왜곡 현상은 인간의 인지능력을 폭발적으로 향상하는 중요한 교육의 프로세스였다.
실제로 일어났던 이야기가 계속 변형되고 왜곡되지만 결국 이 과정은 궁극적으로 가상성을 탄생시킨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사피엔스가 구전을 통해 이야기를 전하면서 지속해 왜곡과 변형을 일으키는 과정은 인간의 창조적 능력과 가상성을 탄생시키는 시초이자 최초의 '인지 혁명'이며 교육 혁명이었다.
스토리텔링은 인간에게 가상성을 꾸준히 연습하는 매우 중요한 기회였다. 하나의 스토리에 상상과 허구가 결합해 변형과 왜곡이 반복되는 과정에서 각각의 스토리텔러는 가상성을 생산할 수 있는 인지적 학습이 이루어진다.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해 가상성을 창조하는 능력을 모두가 저절로 학습하는 것이다.
7만여 년 전에 인류 최초의 인지 혁명을 이끌며 탄생한 가상의 스토리는 문자와 기술이 발달하자 글이나 책의 형태로 완성된다. 이때부터 더 이상 스토리의 왜곡이 일어나지 않는다. 문자로 기록된 스토리는 이제 온전히 그 형태를 유지하면서 다른 언어로 번역되고, 사람들에게 더욱 빠르게 전파되고 학습된다.
물론 책으로 완성됐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읽으면서 각자의 문화와 지역, 개인의 자기중심적 관점에서 왜곡이 일어난다. 이 과정은 이야기가 책으로 완성되기 전인 구전 과정에서 일어나는 왜곡과 비교하면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그래서 새로운 가상성이 탄생하기보다는 책 속의 스토리가 저마다의 생활방식이나 지역적 특색 등과 결합하고, 각각의 사회에서 하나의 체계로 자리를 잡게 된다.
스토리의 확장성은 엄청난 규모의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최고의 비결이 돼줬다. 가상성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에게 공유되고 학습돼 신화, 종교, 문화, 생활양식 등의 형태로 한 집단이나 사회, 국가를 이끄는 중요한 가치로 자리 잡았다.
스토리는 단지 스토리의 형태로만 머물지 않았다. 입을 통해, 문자와 인쇄술을 통해 수많은 사람에게 전파된 허구적 스토리는 예술, 기술, 철학, 문학, 미디어 등 그 시대 최고의 기술로 시각화되고 구체화했다. 이러한 가상성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창조된 가상 물은 수많은 사람을 하나로 결집하는 집단의식을 형성해왔다.
한편, 인간은 자신들의 가상성을 더욱 확장하기 위해 전쟁도 불사했다. 전쟁 과정에서는 인간의 인지적 능력도 엄청나게 발달한다. 인간이 다른 가치를 가진 집단과 부딪치면 서로에게 자신들의 스토리를 신봉하고 가치를 따르도록 강요하면서 충돌한다.
이때 충돌의 상황이 극대화되면 전쟁이 발발하기도 한다. 충돌의 과정에서 각각의 집단은 생존과 지배를 위해 그들의 지적 능력을 최고로 활용하고, 이를 통해 인간의 지적·인지적 능력이 급격하게 향상되는 것이다.
◇ 원시인, 그들만의 가상성을 창조하다
호모사피엔스의 허구적 스토리텔링은 인간 사회에서 최초의 가상현실적인 행위였다. 이런 가상현실적인 행위는 사냥을 기초로 하는 원시사회에서도 꾸준하게 일어났다. 스페인의 알타미라 동굴에는 살아 움직이는 듯한 들소들의 암벽화가 그대로 보존돼있다.
이 벽화는 기원전 1만 7천년~1만 5천년경 후기 구석기시대에 그려졌다고 추정된다.
벽화에 그려진 들소들은 저마다 다른 움직임을 하는 데다가 그림의 표현 기법도 원시시대 인류의 작품이라고 하기에는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다. 빨간색, 보라색, 검은색을 사용해 들소를 더욱 사실적으로 묘사했으며, 울퉁불퉁한 바위의 표면을 활용해 들소의 신체를 입체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이 벽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동물의 그림 곳곳에, 돌에 찍히거나 불에 그을린 자국이 있다. 학자들은 원시인들이 벽화에 그려진 동물을 대상으로 가상스러운 사냥을 한 흔적이라고 추정한다.
미술사학자인 언스트 곰브리치(Ernst Gombrich)의 '서양 미술사'(The story of ART)에는 유럽의 한 화가가 아프리카 마을에서 소들을 그린 후에 그림을 가져가려고 하니 원주민들이 크게 실망하며 "당신이 그 소들을 끌고 가버리면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갑니까?"라고 항의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이야기를 알타미라 동굴벽화와 연결 지어 보면, 원시인들은 동굴 깊숙한 곳에 들소를 그려놓고 사냥하는 가상스러운 행위로 사냥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사냥의 성공을 기원한 사실을 추측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주술적 행위를 넘어 인류 최초의 가상적 게임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원시시대의 인간들은 동굴 안에서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고 벽에 그려진 가상의 사냥감을 사냥하는 시뮬레이션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적 게임의 시조이며, 나아가 완벽한 원시 세계의 버추얼 리얼리티를 창조한 메타버스의 원류라고 볼 수 있다.
후기 구석기시대의 또 다른 유적 중 하나인 프랑스 라스코 동굴벽화도 좋은 예다. 들소와 야생마, 사슴, 염소 등의 역동적인 모습이 그려진 이 벽화에는 이미 사냥으로 상처를 입은 동물의 모습도 있다. 이 벽화가 실제 사냥 전에 사람들의 자신감을 고양하는 매개체로 사용됐음을 짐작하게 해준다.
이 동굴벽화의 특징은 들소의 그림이 알타미라 동굴벽화의 들소와는 달리 매우 추상적으로 묘사돼있다는 점이다. 동물의 형태에 가상성을 부여해 사냥하는 사람들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행위로도 추정된다.
이처럼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동굴벽화를 통해 그들만의 가상성을 만들고 사냥의 전투 의식을 극대화해 집단의 결속력을 다져왔다. 이 역시 원시적 버추얼 리얼리티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연합뉴스 / 이세영 기자
원문 : https://www.yna.co.kr/view/AKR20241112094800371?input=119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