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이 아닌 민간에서 발행하는 '스테이블 코인' 시장이 급부상하면서 은행권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현재 은행들은 스테이블 코인과 대척점에 서 있는 한국은행의 디지털화폐(CBDC) 테스트에 참여 중이기 때문이다. CBDC는 중앙은행이 직접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로, 법정통화와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과 달리 그 자체로 법정통화 위상을 갖는다.
이같은 이유로 한국은행은 CBDC를 추진해왔는데 그 사이 달러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이 급성장하며 국내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대응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CBDC 무용론까지 제기되자 은행권의 고심도 깊어졌다.
'CBDC 테스트' 놓고…한은·은행권 온도차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한국은행과 7개 은행(농협·신한·우리·기업·국민·하나·부산)이 진행 중인 'CBDC 활용성 테스트'가 오는 30일 종료된다.
CBDC는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화폐로, 한국은행은 지난 4월부터 소비자 10만명을 대상으로 CBDC를 이용한 물품 구매 등 지급·결제 기능을 시험해 왔다.
문제는 '2차 테스트'를 앞두고 한국은행과 시중은행 간에 이견이 불거졌다는 점이다. 미국·유럽연합(EU) 등이 스테이블코인 법제화를 추진 중이고, 정부도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을 예고한 상황에서 CBDC가 실질적인 비전을 갖고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테스트 과정에서 적게는 수십억 원, 많게는 수백억 원에 달하는 비용이 소요되는 점도 은행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CBDC의 장기 로드맵을 명확히 제시해 달라는 입장을 한국은행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가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도록 설계된 디지털 화폐라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CBDC와 민간(재단·기업)이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은 발행 주체와 법적 성격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CBDC 반대는 아냐…스테이블코인도 투트랙"
일각에서는 은행권이 한국은행의 CBDC 테스트에서 이탈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실제 디지털화폐 실무를 담당하는 은행 관계자들의 의견을 종합하면 "CBDC와 스테이블코인 실험을 투트랙으로 병행해야 한다"는 인식이 우세했다.
은행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CBDC와 스테이블코인 중 어느 쪽도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 스테이블코인에 시장이 뜨거운 건 사실이지만, 정작 스테이블코인을 쓰면 '무엇이 달라지는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양쪽 모두 장단점이 뚜렷한 만큼, 은행 입장에서는 두 가지를 동시에 준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은행과의 갈등설에 대해서는 "CBDC 테스트 과정에서의 의견 조율일 뿐,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또 다른 은행권 고위 관계자도 "CBDC와 스테이블코인은 결국 경쟁을 통해 승자가 결정될 수도 있고, 각자의 용도에 맞는 역할을 하며 공존할 수도 있다"며 "은행은 두 가지 모두를 준비해 결국은 시장과 소비자의 선택을 받는 쪽에 집중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CBDC 절실한 한은…'2차 테스트' 비용 분담하기로
한편 한국은행은 전날 '금융안정 보고서’를 통해 스테이블코인의 위험성에 대해 강하게 경고했다. 민간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할 경우 '코인런(대규모 코인 인출 사태)'가 이어져 금융시스템 리스크로 확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CBDC를 적극 추진 중인 한국은행은 '2차 테스트'에 드는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은행권과 일정 부분 비용을 분담하기로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은행권은 CBDC 테스트에 참여하는 동시에 스테이블코인 시장 선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제 국민은행과 카카오뱅크 등은 최근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을 잇달아 출원하며 대응에 나섰다. 카카오뱅크 관계자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은행권은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위한 합작법인 설립도 검토 중이다. 은행법상 허용된 15% 출자 한도 내에서 여러 은행이 함께 지분을 투자해 공동 법인을 만들고, 이 법인이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는 방식이다.
파이낸셜뉴스 / 김근욱 기자
원문 : https://www.fnnews.com/news/202506260714222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