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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동의 젠트리피케이션, 그 단상에서 피어난 아이디어
2018년의 어느 가을날, 서울 성수동의 한 카페에서 미팅을 마친 허세영 대표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때 공장과 창고가 즐비했던 이 거리는 이제 힙스터들의 성지로 변모해 있었다. 세련된 카페와 편집숍, 그리고 미디어 스타트업들로 가득 찬 골목은 활기찼지만, 그 이면에는 또 다른 현실이 존재했다.
허 대표는 이 순간을 루센트블록의 창업 계기로 꼽는다. 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주말마다 성수동에서 소셜벤처 활동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었다. 카네기멜론대학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그의 기술력은 사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다.
"2015-16년경 성수동은 아직 공장 부지였어요. 소셜벤처들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동네가 활기를 띠더니, 유명 브랜드들이 하나둘 입점하기 시작했죠. 크래프터스, 무신사 같은 큰 회사들이 지금 그곳에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서 부동산 가격도 천정부지로 올랐고요.“
허 대표는 동네가'핫'해지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주목했다.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들이 떠나게 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런 현상은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그 혜택을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는 없을까? 부동산 가치 상승의 혜택이 소수의 부자들에게만 돌아가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조금씩 참여할 수 있다면?“
이 단순한 질문이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씨앗이 됐다. '많은 사람들이 소액으로 부동산에 투자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겠다는 비전이 형성된 순간이었다.
■"몇십만 원으로 강남 부동산을 소유한다고요?“
2018년, 허세영 대표는 루센트블록의 법인 설립을 완료했다. 하지만 실제 서비스를 출시하기까지는 약3년 반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아이디어는 혁신적이었지만, 현실적인 장벽은 높았다.
"처음에 변호사에게 사업 계획을 설명했더니, '자본시장법을 어떻게 풀었냐'고 물어보더라고요. 그때 자본시장법이 뭔지도 몰랐죠," 허 대표는 웃으며 회상했다. "금융 규제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어요. 하나를 해결하면 또 다른 문제가 나타났죠.“
부동산을'토큰화'해서 쪼개 판다는 개념은 당시 한국에서는 생소했다. 게다가 법적으로도 회색 지대에 있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부동산 소유권을 디지털 토큰으로 쪼개는 이 방식은 증권법, 부동산법, 그리고 블록체인 규제가 교차하는 복잡한 영역이었다.
"저희는 엔지니어와 개발자들로 구성된 팀이었어요. 갑자기 복잡한 금융 규제와 씨름하게 된 거죠. 매일같이 새로운 장벽에 부딪혔고, 때로는 정말 불가능해 보였어요.“
그러나 허 대표와 팀은 포기하지 않았다. 금융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규제 당국과 지속적으로 소통하며 합법적인 모델을 만들어갔다. 3년 반의 노력 끝에2022년4월, 마침내'소유(SOYO)'라는 이름의 서비스를 론칭할 수 있었다.
"'소유'라는 이름에는 저희의 철학이 담겨 있어요. '모든 이에게 소유의 기회를'이라는 미션처럼요. 누구나 부동산을 소유하고 싶어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잖아요. 특히 좋은 상권의 상업용 부동산은 일반인이 접근하기 불가능한 영역이었죠.“
루센트블록의 플랫폼은 이런 장벽을 허물었다. 최소10만 원부터 투자가 가능하도록 설계된 이 서비스는 한국 최초의STO(증권형토큰) 플랫폼으로서 부동산 시장의 게임 체인저가 됐다.
■"단 몇 시간 만에 완판": 혁신의 증거
루센트블록의 첫 프로젝트는 부산의 유명 카페 체인 건물을 토큰화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첫 프로젝트가 수십억 원 규모였는데, 공모가 시작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마감됐어요. 저희도 깜짝 놀랐죠.“
이 성공에는 비밀이 있었다. 루센트블록은 단순히 부동산을 쪼개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임차인과 투자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독특한 구조를 설계했다.
"우리는 매출 연동형 임대료 모델을 도입했어요. 기존의 고정 임대료가 아니라, 임차인의 매출이 올라갈수록 임대료도 상승하고, 그에 따라 투자자의 수익도 늘어나는 구조죠. 이렇게 하면 건물주와 임차인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게 됩니다.“
또한 투자자들에게는 브랜드의 팬으로서 특별한 혜택도 주었다. "투자한 분들은 해당 브랜드의 전국 매장에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렇게 소비자, 임차인, 건물주가 모두 윈-윈하는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죠.“
두 번째 프로젝트도 비슷한 성공을 거뒀다. 수원 행궁동에 위치한 이 건물은 단순한 부동산이 아니라, 도시 문화를 창조하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두 번째 프로젝트는 오래된 숙박시설을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케이스예요. 어반플레이라는 회사와 협업해서 아트 갤러리, 디자인 숍, 카페 등이 어우러진 복합 문화 공간을 만들었죠. 단순히 임대료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가치를 높이는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이러한 성공 사례들은 루센트블록의 모델이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하는 비즈니스임을 증명했다. 허 대표는 이를 통해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부동산을 넘어선 비전: 소유의 민주화
허세영 대표의 비전은 단순히'부동산 조각 투자'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저희가 하는 일은 좁게 보면 부동산 토큰화지만, 넓게 보면'소유의 민주화'예요. 지금까지 대자본가들만 접근할 수 있었던 좋은 자산에 일반 사람들도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이는 단순한 투자 기회 제공을 넘어,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더 근본적인 사회 문제에 대한 접근이기도 하다.
"우리가 살아가는 자본주의 시스템에서 자산의 불평등은 계속 심화되고 있어요. 좋은 자산은 이미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게 더 많이 집중되는 구조죠.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플랫폼은 작은 자본을 가진 사람들에게도 좋은 자산에 투자할 기회를 제공하는 겁니다.“
허 대표는 이 모델이 부동산을 넘어 다양한 자산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본다. "미술품, 와인, 고가의 수집품... 이런 대체투자 자산들도 결국 소유권을 나눌 수 있어요. 더 나아가 지적재산권이나 로열티 수익 같은 무형자산도 토큰화할 수 있죠.“
그는 블록체인 기술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블록체인은 중개자 없이 가치를 안전하게 이전할 수 있는 기술이에요. 이것이 소유권을 쪼갤 수 있는 기술적 바탕이 됩니다. 저희는 복잡한 법적, 기술적 문제를 해결해서 이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고 있어요.“
■창업가의 내면: "매일이 도전이다“
루센트블록이 외부에서 볼 때는 성공가도를 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창업자의 내면은 늘 고뇌와 도전으로 가득하다. 허 대표는 서울과 대전을 오가며 수백 회 이상 기차를 타고, 때로는 새벽 시간까지 일하기도 한다.
"스타트업CEO로서의 삶은 영화처럼 화려하지 않아요. 매일이 위기이고, 매일이 도전입니다. 규제를 넘기 위한 법적 도전, 기술 개발의 어려움, 인력 채용과 유지, 자금 조달... 해결해야 할 문제가 끝없이 밀려오죠.“
특히 블록체인과 금융이 융합된 영역은 전례가 없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저희는 법과 규제의 경계에서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어요. 때로는 규제 당국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하는 영역이죠. 그럴 때마다 최선의 방법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야 해요.“
팀을 이끄는 리더로서의 책임감도 크다. "30명의 직원들이 저를 믿고 함께하고 있어요. 그들의 생계와 커리어가 걸려 있죠. 그리고 저희 플랫폼에 투자한 수많은 고객들... 이 모든 분들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그럼에도 그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명확하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요. 자본주의가 만든 불평등을 자본주의의 도구로 해결하는 아이러니가 있지만, 이것이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의사결정의 지혜: 경청하고 행동하라
허 대표는 의사결정에 있어 독특한 철학을 가지고 있다. "저는 많이 물어보는 편이에요.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의 이러한 접근법은 겸손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실용적인 지혜에서 나온다.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 둘 다 장단점이 명확한 상황이기 때문이에요. A안, B안 모두 각자의 장점과 단점이 있죠. 그럴 때는 다양한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게 중요합니다.“
특히 중요한 결정 앞에서 그는'4분면 우선순위' 접근법을 활용한다. "모든 일을4가지로 분류해요. 급하고 중요한 일, 급하지만 중요하지 않은 일, 중요하지만 급하지 않은 일, 급하지도 중요하지도 않은 일. 이렇게 구분하면 어떤 일에 리소스를 집중해야 할지 명확해집니다.“
이러한 체계적인 접근법 덕분에 그는 창업 초기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위기 상황을 헤쳐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방법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결국'행동'이라고 강조한다.
"아무리 좋은 의사결정 방법이 있어도, 결국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어요. 70%의 확신이 들면 행동하세요. 100%를 기다리다 보면 기회는 사라집니다.“
그는 특히 젊은 창업가들에게"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라"는 조언을 전한다. "인생은 생각보다 짧아요. '언젠가 해야지'라고 미루지 말고,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지금 시작하세요.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요.“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허 대표가 창업가와 리더들에게 꼭 추천하는 책이 있다. 바로 일본의 사업가 이나무리 가즈오의'왜 일하는가'다.
"이 책은 단순한 비즈니스 서적이 아니에요. 인생의 목적과 일의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죠. 특히 저에게 깊은 영감을 준 부분은'전력투구'의 자세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그는 이 책에서 말하는'전력투구'의 마인드셋이 창업 과정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나무리는70대의 나이에 파산 직전의 일본항공을 맡아 단기간에 흑자로 전환시켰어요. 그가 보여준 집중력과 헌신, 그리고 목적의식은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허 대표는 젊은이들이 이 책을 통해 단순히 성공 방법론이 아닌,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지금 디지털 시대에는 많은 정보와 기회가 있지만, 정작'왜' 일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놓치기 쉬워요. 이 책은 그런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부산과의 만남: 블록체인 특구의 가능성
루센트블록은 최근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와MOU를 체결하고 부산 블록체인 특구와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허 대표는 이 협력이 단순한 지역 사업 확장을 넘어서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부산은 대한민국 블록체인 특구로서 어떤 실험도 가능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있어요. 이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테스트하고 검증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입니다.“
특히 그는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의 김상민 대표와의 협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김상민 대표님은 단순히 부산만 바라보지 않고 글로벌 비전을 가지고 계세요. 지역 블록체인 생태계를 글로벌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그 비전에 저희도 동참하고 싶습니다.“
루센트블록은 부산에서의 비즈니스 확장을 위해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고 있다. "부산의 특색 있는 상업 부동산을 토큰화하는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에요. 또한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와 함께 블록체인 기반의 지역 화폐 모델도 구상하고 있죠.“
허 대표는 부산이 가진 독특한 장점에 주목한다. "부산은 항구도시로서 개방성과 역동성을 가지고 있어요. 또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블록체인에 대한 시민들의 높은 관심도 강점이죠. 이런 환경에서 혁신적인 서비스가 탄생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는 부산이 단순히 한국의 블록체인 허브를 넘어, 아시아의 디지털 자산 중심지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싱가포르, 홍콩 같은 도시들이 아시아의 금융 허브 역할을 했다면, 부산은 디지털 자산의 허브가 될 수 있어요. 그리고 루센트블록이 그 여정에 함께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금융의 미래: 전통과 혁신의 조화
블록체인과 토큰화는 금융 산업을 어떻게 변화시킬까? 허 대표는 이 질문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한다.
"사람들은 종종 전통 금융과 디지털 금융을 대립하는 개념으로 봅니다. 하지만 저는 이들이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라고 생각해요. 서로 융합하면서 더 나은 금융 서비스를 만들어낼 수 있죠.“
그는 전통 금융기관들도 이미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T)을 거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은행들도 모바일 앱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빅데이터와AI를 활용하고 있잖아요. 블록체인 기술은 이러한 디지털화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허 대표가 생각하는 금융의 미래는 고객 중심의'효율성', '편의성', '안정성'이 크게 향상되는 방향이다. "궁극적으로 금융은 사람들의 삶을 더 나아지게 하는 도구여야 해요. 복잡한 기술이나 용어 뒤에 숨지 않고, 누구나 쉽게 접근하고 이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는 루센트블록이 이런 미래를 앞당기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저희가 하는 일은 단순히 부동산을 토큰화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의 접근성을 높이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금융 민주화'의 의미라고 생각해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
허세영 대표의 창업 여정은'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가능하게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는 이 경험을 통해 깨달은 교훈을 공유한다.
"창업을 시작할 때는 모든 것이 불확실했어요. 규제의 벽, 기술적 한계, 시장의 회의적인 시선... 이런 장애물들이 너무 커 보였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니 불가능해 보였던 일들이 하나둘 현실이 되었어요.“
그는 '창업의 역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스타트업은 실패할 확률이 훨씬 높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유는, 성공했을 때의 임팩트가 크기 때문이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허 대표는'소유'라는 서비스가 단순한 투자 플랫폼을 넘어,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길 바란다. "자산의 소유권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분산된다면 우리 사회는 조금 더 공정해질 수 있어요. 이것이 저희가 추구하는 비전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적 가치를 강조한다. "블록체인은 단순한 투기 수단이 아닙니다. 이 기술은 중개자 없이 가치를 안전하게 이전할 수 있는 혁신적인 도구에요. 이를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불가능했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사회적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부산에서 시작된 루센트블록과 부산디지털자산거래소의 협력은 이러한 비전을 현실로 만드는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허세영 대표의 도전은 계속된다.
비온미디어 / 이정훈 기자
원문 : https://www.bonmedia.kr/news/articleView.html?idxno=3256